요루시카 도작 - 사상범 뮤비 해석
도작 사상범 뮤비|embed
요루시카의 새 앨범 <도작>의 <사상범> 뮤비이다.
쉽띵작이니까 안 봤으면 꼭 보고 오자.
그런데 며칠 전에는 무슨 뜻인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이 뮤비에 대해 어느 정도 해석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이걸 의식적으로 엄청 생각한 건 아니고..
오늘 아침에 길을 가다가 불현듯 머리 속에서 답이 나왔다.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는, 작품의 내재적 관점 뿐 아니라 외재적 관점 또한 중요하다.
<사상범> 이라는 음악은 <도작> 이라는 큰 앨범에 속한 물건이고,
이걸 만드는 아티스트 요루시카는 자기들 앨범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컨셉질을 좋아한다.
게다가 이번에는 나부나가 아예 주제를 중심으로 소설까지 써버렸다고 한다. 방금 인터뷰에서 보고 왔다.
https://blog.naver.com/cristalgard/222045829620
도작이라는 앨범은 도작을 하는 남자에 대한, 혹은 도작가 남자가 부르는 노래들이다.
그리고 사상범 뮤비의 주인공도 마스크를 쓴 남자이다.
이 남자는 분명히 앨범의 주인공인 도작가일 것이다.
이것들을 염두에 두고
그러면 이전에 내가 궁금해했던 의문들에 답해보겠다.
왜 가면을 쓰고 있을까?
주인공은 도작을 하는 사람이다.
즉 가면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숨기고 어떤 이유에 의해서, 아마도 팔아먹기 위해서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훔쳐내는 것을 암시한다.
왜 무슨 와인 같은 눈물을 흘릴까?
주인공은 눈물을 흘린 뒤 마스크를 벗으려 한다.
내 생각에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통해 주인공의 비통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 같다.
와인처럼 표현한 것은 그저 담담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진짜 눈물로 하기에는 안 어울리고 그렇다고 피눈물처럼 표현하기에도 이상하다.
눈물을 의미하지만 눈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흘리게 했다고 생각한다.
왜 벗으려할까?
하이라이트에서 주인공은 눈물을 흘린 후 가면을 벗으려 한다.
주인공은 음악을 훔쳐내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자기 자신에서부터 나온 음악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가면을 벗으니까 또 다른 가면이 계속 나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가면을 벗자 새로운 가면이 나온다.
이것은 주인공이 도작을 그만두며 오롯이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음악을 훔쳐버린 음악을 만들게 된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이를 비참하게 여긴다.
화가나서 거울을 부수고 어항을 부수고
종국에는 얼굴을 재떨이로 찍어대면서까지 가면을 벗으려 한다.
그러나 가면은 결코 벗겨지지 않는다.
도작을 해오던 남자는 이제,
오직 자기 자신만의 음악이라는 것은 만들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려 해도 도작이 되어 버린다.
결국 남자는 가면을 벗는 것을 포기하고 소파로 무너진다.
이 때 쯤 알 수 있지만, 혹은 영상을 다시 봤을 때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의 방에 이미 벗겨져 버려진 가면들이 이리 저리 널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주인공은 이런 짓을 한 두 번 한 게 아니리라.
마지막에 처음 쓰고 있던 가면을 다시 쓰는 건 무슨 의미일까?
마지막 장면의 부서진 마스크의 의미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가면을 다시 쓴다.
그리고 정말로 마지막에는, 주인공의 가면이 클로즈업 되면서 가면이 깨져나가는 것을 보여주며 영상은 끝난다.
가면을 다시 쓰는 것은 주인공이 결국 도작 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였음을 암시한다.
사실 주인공은, 자신의 도작을 혐오하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멋진 작품이라고 여기고 있다.
특히 하이라이트의 거울 장면에서 이에 대한 힌트가 존재한다.
주인공이 거울을 깨는 장면을 자세히 보면, 현실에서는 손으로 거울을 깨는데,
깨진거울 속에는 자신의 새로운 가면을 맘에 들어하면서 손으로 턱을 괴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거울속에서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 라는 말이 들려올 거 같다.
사실은 맘에 들었겠지. 하지만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기에 주인공은 괴로워한다.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도작 밖에 만들지 못하는 자신을 저주하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처음에 쓰고 있던 가면을 다시 쓰면서, 도작 밖에 만들지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인다.
가면이 깨지는 것은, 주인공이 도작이라 생각하는 것이 사실 도작이 아닌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암시한다.
혹은 도작을 하는 것이 사실은 도작이 아니고, 그 또한 자기 자신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그토록 원했던, 가면을 벗은 자기 자신의 음악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주인공이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몰랐을 뿐.
음악의 도작에 대해서는 요루시카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는데, 대중 음악 중에 엄밀하게 말해 도작이 아니라고 할 만한게 있냐는 생각이 있다.
물론 정말로 도작을 하진 않았겠지만, 어디까지가 작품을 훔치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가? 그에 대해서는 굉장한 논란이 있을 것이다.
다프트 펑크의 앨범 중 가장 성공한 앨범은 아마 discovery일 것이다.
그런데 이 앨범의 곡들은 샘플링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렇게 말하면 나빠 보이지만 전자음악에서 샘플링을 하는 건 매우 평범한 일이다.
https://namu.wiki/w/다프트 펑크#s-7
https://youtu.be/w8Ndijo2ysM
이걸 도작이라 할 수 있을까?
다프트 펑크는 누구나 인정하는 전자음악계의 슈퍼스타이다. 그런 사람들도 이러는데... 어느 누가 도작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가 내 해석이다.
그 외에 까마귀니 기모노 입은 여자니 이런 건 소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핵심적인 내용과 내가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다고 본다.
요루시카 갤 댓글
해석이 1차원적이라고 까는데 인정한다. 나는 소설도 안 읽었고 까마귀니 기모노녀니 하는 장면들도 그냥 넘겨버렸다. 가장 심각한 건 가사랑 제목 해석은 아예 포기한 점이다.
그래서 초반에 외재적 운운 했지만 결국 영상만 따지는 내재적 해석에 불과하다. 이 글은 그냥 동인지 2차 창작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과거 블로그 댓글
이 분도 해석이 멋있다잖아? 꿈보다 해몽이라구 친구!